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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도 자라나는 무는 잡초인가? 아닌가?

by root_ 2024.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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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자란 무 [출처:픽사베이]

 

 

잡초인가?

어떠한 식물이 잡초인지 아닌지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무가 어느 집 꽃밭에 자라 있다. 기껏 정성을 들인 꽃정원이 무 때문에 잘 자라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무가 뽑아야만 하는 잡초가 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여 '이 무가 저절로 우리에게 왔구나 뽑아서 맛있게 요리해 먹어야지!' 한다면

이 사람은 이 무를 채소로 보고 있으므로 잡초가 아니다.

 

잡초라는 것은 식물학적인 분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잡초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작물이나 채소라는 단어도 어디까지나 사람의 관점에서의 분류이다.

식용 등으로 사람에게 이로울 때에야 비로소 그 작물은 채소나 작물이라고 분류된다.

 

쑥은 밭을 어지럽히는 대표적인 풀이다. 

이 쑥이 떡으로 뜸으로 사용되어질 때에는 사람에게 유용한 식물이 된다.

미나리는 벼농사를 방해하는 잡초이다. 하지만 미나리는 식용으로도 훌륭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다.

미나리를 재배하는 논에서는 벼가 오히려 반대의 입장이 될 수 있다.

우연히 미나리 논에 들어온 벼라면? 뽑아야 하는 건 미나리가 아닌 벼인 것이다.

 

같은 식물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잡초이기도 아니기도 하다.

 

 

잡초는 '바라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식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어떠한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이렇게 정의하였다.

 

 

'잡초란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다.'

길가에서 자라는 이름 없는 풀을 내가 그 풀을 보기에 아름다움을 깨달아 집안에 한 송이를 꽂아둔다면, 그 들꽃은 어느새 잡초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자이자 식물학자인 에머슨의 정의는 아마도 우리가 잡초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듯

우리가 주위의 많은 가치 있는 것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일것이다.

 

우리 주변에 자라는 잡초를 관심 있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하지만 우리가 눈길을 주는 순간,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다른 곳에서 애타게 찾고 있던 것을 바로 내 발밑에서 발견하는 일은 어쩔 때는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어느 지역에서의 민들레는 세분화해서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세분화한 그 민들레의 용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우리 주위의 야생 풀들을 뭉뚱그려서 잡초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 우리가 식물을 활용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면서 우리와 가깝던 식물의 가치도 함께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말이 된다.

 

 

[도시에서 잡초] 라는 책을 보고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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